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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음의 곡선 Where Quiet Turns》

홍티아트센터 Hong-ti Art Center

김수정 개인전 Kim Sujeong's 5th Solo Exhibition

2025.7.9.(Wed) - 7.23.(Wed)

Artist: KIM Sujeong

Design: ideal design studio

Photography: Studio Jeongbiso

Installation & Sculpture Production: Bang Gicheol
Installation Assistance: Park Jaehyun, Lee Heewon, Yang Heeyeon
Sound Installation & Programming: Jeong Manyoung
Video Production: Studio Jeongbiso – Park Dongseok, Kim Ki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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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친밀한 관계 속에서 폭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때, 그 징후들은 조용히 스며든다. 소리 없이 감정과 관계의 표면 아래 서서히 쌓여가는 긴장과 불안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예고편이다. 나는 그런 무언의 증후들, 들리지 않는 소리들, 비가시적인 움직임과 파동들을 포착하고자 했다.

폭력을 촉발하는 기미와 불편한 전조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잔잔한 파동들은 종종 인지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지만, 분명히 흔들리고 있는 감정의 결들은 언어화되지 못한 순간으로 남아 곱씹고 기억하게 했다. 무음의 곡선은 소리 없이 흔들리는 친밀한 관계 속에 축적된, 가볍고도 무거운 폭력의 순간과 그 이야기들을 담고자 한다.

 

 

전시서문: 김소진

 

《무음의 곡선》은 폭력이 ‘폭력’으로 인식되기 이전, 우리가 감지할 수 있지만 쉽게 언어화할 수 없는 불편한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구성한다. 작가는 관객에게 익숙한 공간과 사물, 몸의 감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폭력은 종종 소리 없이 스며든다. 감정과 관계의 표면 아래 말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서서히 축적된다. 그는 이런 무언의 증후들, 들리지 않는 소리와 보이지 않는 파동들을 포착해 간다. 말이 되지 못하고 감각으로만 남겨진 순간들은 내면 깊이 일렁이며 우리 안에 각인된 장면처럼 파고든다. 전시는 바로 그 흔들리는 감정의 틈 사이에 박혀진 가볍고도 무거운 폭력의 조각들을 드러낸다.

김수정은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언어로는 붙잡기 어려운 정서의 균열과 일상의 간극에 스며든 긴장의 기류를 시각화한다. 〈휘는 시간〉은 매일 접할 수 있는 소리의 반복과 리듬의 어긋남을 통해 관계 속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장난 끝〉은 통제력을 잃어가는 감정의 흐름을 비언어적으로 표현한다. 〈떼어지지 않은〉, 〈닦이지 않는〉은 부엌과 벽지, 화장실과 타일이라는 일상적인 소재 위에 남겨진 정서적 흔적을 펜화로 구성한다. 〈무음의 진동〉은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조명을 통해 천둥번개나 단전처럼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찾아오는 불안을 가시화한 설치 작업이다.

《무음의 곡선》은 김수정의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관계 안에서 감지되는 미세한 불편함과 폭력의 전조를 나타낸다. 작가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균열과 사소한 움직임 속에 감춰진 갈등에 주목하여, 사랑이라는 심리적 친밀감 아래 쉽게 간과되는 폭력의 시작점을 끌어낸다. 장난처럼 시작된 신체 접촉, 반복되는 소리와 행동, 그리고 조명과 그림자의 흐름처럼 감각으로만 인식되던 장면들은 결국 자전적 경험에 의한 흔적들에서 발견된다. 이번 전시는 비언어적 방식으로 감정의 축적과 긴장의 고조, 그리고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파편들을 그려낸다. 작가는 익숙함 속에 내재한 낯선 감각들을 통해 관계의 분열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전시평론 : 콘노 유키

무음의 곡선이 보여주는 것: 전조, 긴장과 완화, 신념

김수정의 개인전 《무음의 곡선》(홍티아트센터)에  소개된  <휘는 시간>(2025)을 봤다. 세 곳에 놓인 스피커에서 대사나 대화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고 단조로운 소리가 들리는데, 스피커 별로 일상생활의 특정 상황을 청각적으로 전달한다. 각각 동일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잘 들어보면 그 소리가 기계적이기만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전시 공간에 소리로만 나타나는 이 작업이, 하필 “무음의 곡선”이라는 전시에 소개되었을까. 김수정이 “소리 없이 흔들리는 친밀한 관계 속에 축적된, 가볍고도 무거운 폭력의 순간과 그 이야기들을 담고자 한다”고 말하듯이, 소리 배후에 펼쳐진 상황,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감정은 반복되는 소리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김수정이 가사 노동—채소를 썰거나 식기를 정리하는, 그리고 화장실을 청소하는—에 주목한 이유가 있다면, 그가 주제로 다루는 폭력이 내란이나 전쟁처럼 가시화된 양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충분히 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첫 개인전 《사랑과 전쟁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공간 힘, 2017)을 시작으로 그동안의 작품에서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비춘 시선이 반영되었다면, 이번 전시는 도처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의 ‘변곡점’을 가시화하였다. 수평적인 관계였다가도, 어느 순간 그 균형이 깨질 수도 있는—폭력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이 김수정의 작업에 드러난다. 

 

실제로, <휘는 시간>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그릇을 정리하는 소리가 몇 번 커지는 순간이 있다. 유추하건대 쌓인 분노—그릇을 정리하지 않았다는—가 터진 순간이다. 반복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게 일상이지만, 여러 번 반복되는 과정에서 분노 또한 쌓인다. 일상생활은 반복을 통해서 하는 일을 습관화하지만, 터지지 않을 뿐 감정을 억누르는 기저가 된다—그런 의미에서 빙판과도 같다. 그렇다면, 분노와 폭력은 어떻게 다를까. 둘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분노는 타인에게 행동을 요구하지 않고 나에게 머물 수 있지만, 폭력은 내 감정에 머물면서도 반드시 타인을 향한다. 분노는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지만, 폭력은 자기를 위한 것이며 피해와 가해의 선을 스스로 긋는 행동이다. 분노와 폭력은 전자가 잠깐 (그야말로) 도를 넘었을 때 후자로 변이하는 연쇄적 관계이다. 그렇다면, 식기가 부딪쳤을 때 크게 난 소리는 폭력의 흔적인가, 아니면 폭력의 전조일까. 다른 스피커에서 들은 솔질하는 소리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인가, 사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소리 뒤에 분노가 맴도는 삶인가. 우리는 시각화되지 않은 <휘는 시간>을 통해서 소리가 난 상황을 상상하는 데서 더 나아가 폭력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전시에 소개된 다른 작업을 보면, 김수정의 관심사가 폭력 자체를 보여주는 데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이미지가 반드시 동반되는 폭력의 즉시성을 전조적 표현을 통해 늘어뜨린다. 폭력은 행동으로 현현되는 자기충족적인, 바로 그런 의미에서 즉시적/즉자적이다. 장-뤽 낭시(Jean-Luc Nancy)가 말하듯, 폭력은 이미지의 시각적 제시와 더불어 효과와 직결시킨다. 김수정이 유념하는 것은, 폭력이란 무엇이냐는 질문뿐만 아니라 폭력을 가시화하는 수단이 예술일 때, 폭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냐는 질문이다. 주변 작품에 시각적으로 간섭하기도 하는 설치 작업 <무음의 진동>의 깜빡이는 형광등은 거대한 폭력의 전조처럼 나타나지만, 정작 땅은 흔들리지 않고 조명이 정전하지도 않는다—오로지 시각적인 진동(깜빡임)으로 전달된다. 마찬가지로 영상 작업 <장난 끝>(2025)에서 두 인물 간의 다툼은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그럼에도 과격하게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김수정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강렬한—용맹하거나 격렬한 폭력의 이미지가 아니라 폭력으로 넘어서는, 말하자면 도를 넘은 ‘순간’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은 대등한 관계에 균열이 생겨 관계가 둘로 쪼개지기 직전의 상태를 말한다. 관계가 고조되어 ‘휘어진’ 선을 따라가지만, 서사 구조처럼 절정에 다다르지 않고 위기의 주변을 맴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김수정의 곡선은 깨질지도 모르는 상태에 머물면서 나와 적 또는 피해와 가해로 나뉘거나 적대적인  아수라장이 되는 스펙터클의 일보 직전에 서서 힘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긴장 상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김수정은 폭력의 순간에만 집중했을까? 긴장을 품은, 터지기 일보 직전에 머무는 그의 작업은 커진 진폭이 단절을 만들기 직전에 잠깐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닐까. 《무음의 곡선》은 돌고 돌아, 모난 관계와 단절을 이완시키는 출발점을 향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이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는 ‘수집’에 나타난) 반복적 수행(修行이자 遂行인)에 나타난다. 《거두는 밤》(전시공간 영영, 2024)에서 선보인 펜화의 연장선에서 <떼어지지 않은>(2025)과 <닦이지 않는>(2025)이 이번에 소개되었다. 벽지 밑의 낡은 벽지를 떼어내거나 물때를 닦는 장면을 그릴 때, 두 작품은 완벽하게 과거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이 사실을 직시하여 여러 번 애써 지우려는 모습이 (비시각적이지만)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지워지거나 완벽히 없어지지 않는 것을 펜화로 그릴 때, 김수정에게 ‘~않은/않는’이라는 부정형의 표현은 작품 안에서만 맴돌도록 남긴 감정이라 할 수 있다. 폭력은 부재의 이미지를 망각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아무런 일도 없던 걸로 치부되는 삶을 강요받더라도, 나 자신만큼은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 김수정에게 수행적 과정은 작업(작품)을 통해서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부정적 과거와 이를 지우려는 폭력에 맞서는 신념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무음의 곡선》은 폭력의 순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순간 직전의 긴장 상태와 완화, 더 나아가 망각의 강요에 맞선 묵묵한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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