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두는 밤 Waning Nights》
김수정 개인전 / 전시공간 영영
2024. 8. 30.(금) - 9. 15.(일)
거두는 밤 Waning Nights
2024, Wire, LED and drawings, Dimensions variable
Drawings
틈새 The Unfilled Spaces
2024, Pen on paper, 32 × 24 cm
바닥 The Unyielding Floor
2024, Pen on paper, 32 × 24 cm
히쭉 Unwavering Smile
2024, Pen on paper, 32 × 24 cm
마지막 The Last Embrace
2024, Pen on paper, 32 × 24 cm
짐차 Another Home
2024, Pen on paper, 32 × 24 cm
키우고 먹이고 Nurture and Sustain
2024, Pen on paper, 32 × 24 cm
입에 잘 맞는 A Taste of Love
2024, Pen on paper, 32 × 24 cm
기도 A Prayer of Love
2024, Pen on paper, 32 × 24 cm
찰나의 풍경 A Moment's Landscape
2024, Pen on paper, 32 × 24 cm
문 밖 The View Outside
2024, Pen on paper, 32 × 2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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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의 끝에서 거두는 밤
(전시서문: 김소진)
타자와의 관계가 좌절되어 삶이 흐트러질 때 사람은 한없이 연약해진다. 그렇게 낙담의 굴레에 빠지게 되면 원만하지 못한 마음을 끌어모아 눈을 감는다. 푹신하게 몸을 휘감던 침대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일단 망연하게 천장을 올려다본다. 언어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 텅 빈 시선도 결국 밤을 거두기 위한 시동인 것이다. 기가 막힌 어려움으로 온몸에 열꽃이 필 때 눈꺼풀을 내려 눈동자를 덮는다. 그렇게 새벽의 어둠에 고요히 침잠하여 영혼의 호흡으로 밤을 거둔다. 현실의 가장자리로 떠밀려 눈물짓게 되면 영원한 평화를 염원하여 침묵에 젖어 든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 속에서 긴장의 끈을 잠시 놓고 설익은 기도를 한다. 기도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편으로 기대하게 하지만 기도가 기각되면 우리는 더 큰 좌절에 휩쓸리기도 한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기각된 기도는 현실의 번뇌와 일상적인 혼란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를 더 고약하게 만든다.
집은 안식과 평화가 병립하는 성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또 다른 맥락에서 불안과 긴장이 뒤엉켜 역설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김수정은 모순된 피난처인 자신의 집에서 매일 밤 기도를 반복한다. 집은 우리 삶의 내적 갈등과 외부 환경이 교차하는 무대다. 그가 오롯한 성인이 된 이래로 홀로 머무는 집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살며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뿌리가 형성된 곳이다. 작가에게 집은 유년의 시름을 끌어안은 곳이며, 그곳으로의 귀환은 머물렀던 기억의 반복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지나간 침묵을 톺아보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작가의 밤을 거두는 행위는 오늘도 계속된다. 그는 일상에서 포착한 소재들을 정교한 펜화로 담아낸다. 또한 침잠의 세계를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고 고독의 경험을 통해 과거를 넘어선 오늘을 그려낸다. 고독은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며 온정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해방하여 깊은 마음의 정수를 탐색하는 시간으로 변모한다. 고독의 상태는 단지 외로운 존재감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과 연결되는 성스러운 기회가 된다. 이 깊은 고독 속에서 작가는 진정한 자아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 스스로를 다스리고 성장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는 시간을 길어 올려 공감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에게 집은 거주의 개념을 넘어 삶의 의미를 재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구축하는 장소이다. 작가는 침잠의 끝에 밤을 거두어 비로소 이번 전시 《거두는 밤》을 통해 타자를 위해 기도한다. 삶에는 고통과 불안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사람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준다. 그 상처의 기억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휘감고 마음을 옥죄어 부자유 속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김수정의 작업은 우리에게 평생 고난이 동반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풀어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음을 전한다.